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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후유증, 그리고 독일 친구의 박사 디펜스 (Defense)사는 이야기 2019. 4. 24. 03:32
지난 주 금요일부터 시작되어 어제 월요일로 막을 내린 4일 간의 부활절 휴식은 매우 꿀 같이 달콤했다. 친구들과 바베큐 그릴도 공원에서 즐기면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기도 했고, 매우 짧은 일정으로 메찡엔 (Metzingen) 아울렛을 방문하여 쇼핑도 했다. 늘 그렇듯 꿀같은 연휴 뒤에는 재충전이 아닌, 아쉬움을 동반한 후유증이 찾아온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분이 오셨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출근길은 어찌나 여전히 아름다운지.. 발걸음은 연구소를 향해가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공원에 눌러 앉아버렸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비교적 상쾌하게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짧은 팀 미팅 후에 각자 이번 주 해야 할 할당량을 의논하고, 실험에 필요한 장비를 세팅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어느 새 점심이었다.
오늘 오후에는 연구소 바로 옆 대학교에 있는 독일 친구의 박사 학위 논문 디펜스 (Defense)에 초대받았다. 예전부터 왜 도대체 박사 학위 논문 발표를 '디펜스'라 부르는지 이해가 안갔는데, 이제 차츰 내가 졸업이 가까워오니 그 단어의 뜻을 이제는 심히 공감할 수 있다. 그 어떠한 교수들과 청중들의 질문으로부터 나를 방어해야 한다!
친구는 이론 고체물리학 (Theoretical condensed matter physics) 를 바탕으로 하여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위상부도체 (Topological insulator)와 기타 자성 물질의 전기적 전도도에 관한 연구를 박사 기간 동안 진행하였다. PRB에 논문도 세 편 제출하고, 정말 알차게 그리고 건실하게 내실을 쌓아간 친구다. 정말 '독일 스타일'의 물리학도라고나 할까.. 멋진 친구다.
학위 논문 발표와, 치열한 질의응답이 끝난 후 심사 위원장을 맡은 교수님이 심사 결과를 청중들 앞에서 공개한다. 멋진 발표를 마치고, 드디어 심사 위원장을 맡은 교수님이 1.0 점을 선사하며 성공스러운 박사 학위 과정의 마무리를 축하해주었다. 독일에서 정말 재밌다고 느꼈던 중 하나는, 이 나라 사람들은 박수를 쳐야 할 때에 박수가 아니라 '책상'을 쿵 쿵 쿵 두드린다. 마치 문을 노크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멋진 발표 뒤에는 박수 갈채가 아닌, 투박한 망치 소리가 실내에 가득하다. 나도 힘차게 책상을 두드렸다.
독일식 유우머 2.5 Geshaeft machen! (do business!) 일을 하다, 혹은 볼일을 보다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발표를 모두 마치고, 보통은 발표자가 간단한 다과 및 음료를 곁들이는 파티를 준비한다. 프랑스에서는 Pot de these 라고 불렀는데, 독일에서는 뭐라고 부르는지 아직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아쉽게도 나는 저녁에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뒷풀이에는 참석을 못했지만 조만간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건물을 나오면서 잠시 들른 화장실에서는 독일 학생들의 독일식 유우머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붙여놓은 화장실 사용방법에 2.5) Gechaeft machen 을 정성스레 적어놓았는데, 즉 볼일을 보라는 말이다. 하긴, 2번 그리고 3번은 각각 앉으시오, 물을 내리시오를 명명하고 있으니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은 셈이다. 이걸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하는 독일인들의 섬세함(?)을 동반한 유머에 나도 모르게 피식 한다.
어느 덧 일하기 싫어하던 하루도 슬그머니 끝을 향해간다. 적절한 강도의 업무로 연휴 끝에 복귀한 덕분에 내일은 좀 더 힘차게 다시 엔진의 기어를 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Bon cou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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