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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도 아닌, 거북이도 아닌 토북이로 살아가기사는 이야기 2018. 1. 2. 07:28
모처럼의 정신없던 한국 나들이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오니, 어느 덧 새해가 밝았다.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서까지 들고 온 무거운 캐리어 때문인지, 아니면 한 살 더 먹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잠에 취해 뒹굴거리다가 오후 늦게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나서보니 매우 한적하고 느긋한 한 독일의 작은 길이 눈에 들어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길거리에 바쁜 걸음의 사람들로 가득찬 서울이었는데, 새삼스레 내가 정말 다른 세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 이맘 때 서울 종각에서 찍은 거리의 모습. 광화문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의 인상적이었다.
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여자친구가 이번 휴가를 통해서 겪은 한국의 빠른 일처리, 서비스 문화에 대해서 조심스레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머문지 어언 11년이 된, 그 동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비추던, 그녀의 반응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반대로 그 동안 어언 27년을 한국에서 지내온 나에게는 독일, 그리고 프랑스가 보여준 느림보 거북이 문화는 매우 낯선, 불편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10분이면 발급되는 은행 계좌 및 체크카드가 이 곳에서는 약 한 달 가량 소요된다.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불편함에 몸서리를 칠 정도였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순조롭게 적응하여 지내게 되었다.
독일 Halle의 외곽에 위치한 차도를 가로지르는 양떼들의 모습. 양들이 안전히 지나갈 때까지 양쪽 차선의 차들이 조용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었다.
사실 이처럼 빠름과 느림의 대조는 먼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음에 분명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빠르지만 꾀를 부리는 토끼와, 느리지만 우직한 거북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훗날, 쟝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에 의해 재구성된 우화 'Les fables de La Fontaine'에서도 '토끼와 거북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성실함과 우직함에 좀 더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왜 성실함은 항상 느림과 동반되어야 하며, 빠르고 성실함을 모두 갖춘, 토끼와 거북이가 합쳐진 '토북이'의 모습은 나타나지 못했던 것일까?
더 이상 거북이 혹은 토끼를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단순하게 그려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 마냥 거북이와 같은 삶은 앞으로 유럽에서 점차 사라져 갈 것이며, 토끼와 같은 삶 또한 앞으로 한국에서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 이제는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바쁘게 일 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토북이'가 필요한 시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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